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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양림 사건

  • 조사국조사2국
  • 사건유형민간집단희생
  • 결정유형진실규명결정
  • 작성일2008.08.27
  • 조회수228

1. 임연화 등 주민 28명은 1949년 9월 21일부터 9월 22일(음력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까지 양일간 함평군 함평읍 진양리 양림마을의 뒤 동산(선암정)과 마을 앞 저수지 둑(방죽둑비석거리)에서 함평경찰서 소속 경찰유격대에 의해 집단 사살되었다.

2. 사건경과는 다음과 같다. 1949년 9월 21일(음력 7월 29일) 늦은 오후 경찰유격대가 불갑면 불갑산 방향에서 공비토벌작전을 마치고 함평읍 방향으로 귀대하던 중 앞서던 병력수송차량 1대가 펑크가 나자 뒤 따르던 차량이 함께 양림마을 앞 삼거리(주포마을 입구)에서 정차하여 수리 겸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가 마침 가까이 마주 보이는 양림마을에서 야경을 준비하고 있던 마을 주민 장락규가 국방색 복장으로 죽창을 들고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동 유격대는 장락규의 옷차림이나 어눌한 행동을 보고 공비로 착각하여 마을로 진입하면서 대나무숲 등을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이 와중에 유격대원이 장락규를 붙잡아 유격대의 집결지인 선암정으로 인솔하였다. 그 때 마을의 대나무밭을 수색하던 동료 유격대원은 장락규와 그를 인솔하고 있던 유격대원(최판기 순경으로 추정)을 공비로 오인하여 총을 쏘았다. 장락규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장락규를 관통한 총탄에 의해 장락규를 인솔하고 있던 유격대원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판단된다.

유격대원이 부상을 입자 경찰유격대는 주민들을 선암정으로 집결시켜 대나무밭 주인 2명과 마을 주민 2명 등 총 4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마을 청년 19명을 아무런 절차와 이유 없이 함평경찰서로 연행하여 밤새도록 몽둥이로 구타하고 고문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앞서 부상을 입은 유격대원이 1949년 9월 21일 자정쯤 병원치료 중 사망하자, 경찰유격대는 다음 날 다시 양림마을로 들어와 주민 100여 명을 선암정에 집결시켜 3개 마을(신기, 동하, 양림)구장과 마을 주민 등 4명을 사살하고, 양림마을 가옥 7채를 방화하였다. 또한 함평경찰서로 연행했던 마을 청년 19명을 마을 앞 저수지 둑에서 사살하였다.

3. 이 사건의 희생자는 전남 함평군 함평읍 진양리 양림마을에 거주하고 있던 민간인들이다. 이 중 대부분은 20대~30대의 젊은 마을 청년들이었고, 10대 4명과 65세의 여성노인도 1명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던 농민들이었고, 모두 비무장 민간인이었다.

4. 이 사건은 당시 경찰유격대(대장 윤상수)가 불갑산 공비토벌작전을 마치고 귀대하던 도중 차량이 펑크가 나 수리 겸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마을 주민을 공비로 오인하고 수색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동 유격대는 공비토벌작전 수행을 목적으로 함평경찰서에서 편성된 경찰 주도의 공비토벌대로 판단된다. 당시 경찰근무자 등을 탐문 조사한 바, 유격대장 윤상수는 함평경찰서 경비주임이었는데, 사건 당시에는 각 경찰서마다 경비주임이 공비토벌 임무를 맡고 있었다. 직접 가해자로 지목된 유격대원 최병남, 손옹골(일명 손옹굴)은 이미 사망하였음이 확인되었다.

5. 이 사건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전쟁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무장 민간인을 아무런 법적 확인절차도 거치지 않고 무차별 사살한 것은 반인륜적 집단학살이며 명백한 위법행위이다. 국가는 이러한 불법적인 민간인 집단희생에 대해 명예회복과 유가족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6. 경찰유격대가 비교전상태에서 무저항․비무장 민간인을 공비 또는 빨치산에 협조하였다는 혐의만으로 무차별 사살한 행위는 실정법 상 명백한 위법 행위이다. 특히 이 행위는 헌법상 기본권 중 하나인 국민의 생명권이 어떤 경우라도 임의로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치국가의 최소한 원칙도 위배한 행위이다. 본 사건은 사건이 발생한 지 58년이 지나 가해책임을 명확하게 입증하기 어려운 점이 있고 여러 가지 법률적 문제도 있지만, 신청인들과 주요 참고인 진술, 가해자 측 참고인 진술, 사건의 실재를 지적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지방신문(1949.9.25. 호남일보)에 보도된 희생자 수, 사건 발생 날짜, 사건 발생 장소가 본 사건과 일치하는 점 등에 비추어 비전쟁시기 민간인에 대한 불법적인 사살이 명백한 만큼 국가의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7. 국가는 이유도 모르게 희생되고 사실과 전혀 다르게 ‘함평폭도’라는 낙인을 받아온 희생자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 이후 현재까지 반세기 이상 죄인처럼 살아온 유족들에게 명예회복 등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며, 국가의 정중한 공식사과, 위령사업의 지원, 호적정정, 재발방지를 위한 역사기록의 수정 및 등재, 평화인권교육의 강화, 관련 법률의 정비를 권고한다.